AI가 다 해준다면서요?
요즘 AI 에이전트 얘기를 안 하는 커머스 종사자가 없다. 상품 설명 자동 생성, 고객 문의 자동 응답, 재고 예측까지. “이제 사람 손 안 대도 되겠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런데 직접 써보면 이상한 지점이 있다. AI 에이전트는 콘텐츠를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심지어 마케팅 카피까지 쏟아낸다. 하지만 딱 하나 — 돈이 오가는 순간에서 멈춘다.
이번 주 화제가 된 MoltBook 사례가 정확히 이걸 보여준다. 300만 개에 가까운 AI 에이전트가 활동하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에이전트들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분석을 수행했지만 경제적 거래 권한은 전혀 없었다. 만들 수는 있는데 팔 수는 없는 구조다.
커머스에서 이게 왜 문제인가
MD 입장에서 AI 에이전트가 해주는 일을 정리해보면 크게 세 영역이다.
1. 생산 영역 (잘한다)
상품 상세 페이지 초안 작성, 키워드 리서치, 경쟁사 가격 모니터링, 리뷰 분석 요약. 이 영역은 솔직히 사람보다 빠르고 꽤 정확하다.
2. 판단 영역 (어중간하다)
어떤 상품을 밀어야 하는지, 프로모션 타이밍은 언제가 맞는지, 재고를 얼마나 잡아야 하는지. 데이터를 보여주긴 하지만 최종 판단은 여전히 사람 몫이다.
3. 거래 영역 (못한다)
발주, 결제 승인, 정산, 환불 처리, 계약 체결. 돈이 실제로 움직이는 모든 단계에서 AI 에이전트는 권한이 없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신뢰와 책임의 문제로 막혀 있다.
2026년 현재, Agentic AI라는 이름으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AI가 화두다. BigCommerce, Shopify 할 것 없이 “AI가 알아서 운영해준다”는 메시지를 밀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구현을 뜯어보면, 거래 실행 직전에 반드시 사람이 끼어드는 구조다.
병목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왜 AI 에이전트에게 결제 권한을 안 주는 걸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법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AI가 잘못된 발주를 넣어서 3천만 원짜리 재고가 쌓이면 누가 책임지는가? 현행법상 AI는 법적 주체가 아니다. 결국 운영자 책임인데, 통제할 수 없는 행위에 책임을 지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둘째, 결제 인프라 자체가 사람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PG사 본인인증, 사업자 등록번호 기반 정산, 세금계산서 발행. 이 모든 시스템이 “사람이 거래한다”는 전제 위에 세워졌다. AI 에이전트가 끼어들 자리가 구조적으로 없다.
셋째, 이상 거래 탐지가 AI 거래를 적으로 본다. 한 에이전트가 초당 수십 건의 주문을 처리하면? 기존 FDS(이상거래탐지시스템)는 이걸 봇 공격으로 판단한다. AI가 정상적으로 일하는 건데, 시스템이 차단해버리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그래서 실무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내가 현업에서 쓰는 방식은 “반자동” 구조다. AI에게 맡길 수 있는 범위를 명확히 긋고, 거래 실행은 사람이 한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나눈다.
AI가 하는 일: 발주 제안서 생성(수량, 타이밍, 거래처 추천), 가격 변동 알림, 프로모션 성과 리포트 자동 생성, 고객 문의 1차 분류와 답변 초안 작성.
사람이 하는 일: 발주 최종 승인, 프로모션 가격 확정, 환불/교환 판단, 신규 거래처 계약.
이 구조의 핵심은 AI가 “제안”까지만 하고, “실행”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제안의 질이 올라가면 사람의 판단 시간이 줄어든다. 완전 자동화는 아니지만, 체감 효율은 기존 대비 3배 정도 된다.
결제 버튼 누른 그 순간, AI가 매출을 만든다 — Transaction Moment 전략에서 다뤘던 것처럼, 거래가 일어나는 순간에 AI를 끼워 넣는 건 가능하다. 다만 그건 “추천”이지 “실행”이 아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AI 도입 자체가 리스크가 된다.
Agentic AI, 언제쯤 진짜 거래를 할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미 움직임은 있다.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의 에스크로 시스템이 하나의 방향이다. AI 에이전트가 조건을 설정하고,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결제가 실행되는 구조. 블록체인 기반 커머스에서 실험 중이지만, 메인스트림 이커머스에 적용되려면 아직 멀었다.
또 하나는 “권한 범위 제한” 방식이다. AI 에이전트에게 1회 50만 원 이하, 월 500만 원 이하 같은 한도를 주고 그 안에서만 자율 거래를 허용하는 것이다. 일부 B2B SaaS에서 이 방식을 테스트하고 있다. AI 맹신하면 이렇게 됩니다 — 내 실수 모음 5가지에서 얘기한 것처럼, 한도 없이 AI에게 맡기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
현실적으로 2026년 안에 AI 에이전트가 독립적으로 거래를 수행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제안→승인→실행”의 승인 단계가 점점 가벼워지는 방향으로는 빠르게 가고 있다. 원클릭 승인, 배치 승인, 조건부 자동 승인 같은 방식이다.
MD가 지금 준비해야 할 것
결국 핵심은 이거다. AI 에이전트의 생산 능력과 거래 능력 사이에 큰 간극이 있고, 그 간극이 곧 실무자의 역할이다.
AI가 만들어주는 제안의 질을 판단하는 눈, 거래 실행의 최종 버튼을 누를 때의 판단력. 이게 앞으로 MD의 핵심 역량이 된다. 자동화할 수 있는 건 전부 자동화하되, 돈이 오가는 지점만큼은 직접 쥐고 있어야 한다.
AI가 다 해준다는 말에 현혹되지 않는 게 첫 번째다. 정확히 어디까지 맡길 수 있는지 선을 긋는 게 두 번째다. 그 선 위에서 판단 속도를 높이는 게 세 번째다. 이 세 가지가 되면 AI 에이전트 시대에도 충분히 살아남는다.

